낙서면 내제마을
부림에서 낙서면 소재지 닿기전 왼편으로 가면 내제마을이다. 강따라 들판을 질러서 들어가는 길로는 약5km넘게 가는데 웃개(상포) 못미쳐 깊숙히 들어앉은 골짝 마을이다. 그래서 흔히 반산촌 반벌이라는 아늑한 곳인데 옛날 한때는 나지(□池)라는 소지명을 쓴 적도 있다고 한다. 그것은 마을어귀 큰 늪이 있고 소명산의 그림자가 드리우면 청비단처럼 물이 맑은데 수련꽃이 아름다워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내제마을은 양달, 음달로 서로 맞보고 있으며 동쪽이 트이고 강이 보이며 소명산과 옥리봉(옥려봉)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 바로 앞이 논을 옛말대로 봉답(奉沓)이라고 하는데 이는 강을 내려다보면서도 천둥지기라서 동답들이라 부르는가 싶다. 마을 뒤 큰골 그 옆에 시무골,쑥골,배나무골,등의 골이름이 있다. 그리고 두실로 가는 떡꼬(떡고개)동북쪽에 먹골, 동쪽으로 방아골,쑥골, 개장골,서북쪽으로 산저 등의 우리 지명이 그대로 쓰이고 있었다. 강둑에서 조금 떨어진 산자락에 서흥 김씨 재실인 이로재가 있고 몽헌공을 추모하기 위한 소강재는 한때 서당으로 문중 자제들을 교육시킨 곳이며 그때 교재로 활용한 행학절요를 찍어낸 목판23장이 보관되어 있다.(3장분실) 역시 종실인 봉래정도 유서깊은 종실이고 그 밖에도 체화당,세근당,명사정,경지당,동범정,소산정,서수헌,편노당이 있다. 그리고 퇴락한 서강정사와 만송정도 후손인 이헌조씨에 의해 중수를 했다. 몽헌 이동주공의 진사교지와 함께 옛 문헌이 많이 보관되어 있다.마을 위 쪽 열부창녕성씨의 기적비도 있다. 지금은46호가 남아 벽진 이씨가 30호로 역시 대성이고 서흥 김씨8집, 달성빈씨3집,기타 성바지 한두집씩 있다. 2006년 6월 현재 내제마을을 넘나들던 진입도로(군도5호선)는 고개마루 장수터널을 지나 마을까지 2차선 아스콘포장도로로 말끔히 정비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