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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소개 > 지명유래

정곡면 석곡마을

작성자
정곡면
작성일
5425
등록일
2003.08.21
읍면
정곡면
첨부

정곡면 소재지에서 신반으로 가는 국도따라 1.5km 정도의 거리로 한길에 붙어 있다시피 가깝게 자리 잡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법정동리로는 석곡리(石谷里)로서 보통 부르기로는 돌실(乭室)이다, 석곡은 큰 동네(본동)를 말하고 골안 깊숙이 들어앉은 마을은 골돌실 또는 안돌실로 불렸는데 요즘와서는 내곡(內谷)이다, 솔징이로 불렸던 송정(松亭) 평지와 새터(신기)등 여러 뜸인 셈이다. 마을 주위의 산에 소나무가 많았을 뿐 아니라 동구 밖에도 솔밭멧등이라해서 도래솔이 좋은데 이 숲안의 무덤을 두고 광대패(아마 합천 밤마리(율지리)의 대광대패가 신반을 거쳐 이동하면서 이곳에서도 한마당 놀이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가 놀이를 했던 자리라고 전한다.

그리고 이 마을 안편의 산중허리쯤에 유서 깊은 서당 겸 재실 식호당(式好堂)이 있는데 이곳 역시 온통 소나무 숲에 쌓여 있으니 솔밭이라거나 솔징(松亭)이라 부른다. 그리고 평지는 본동 뒷편의 뜸을 말하는데 지형이 평평하여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길 건너 서쪽을 보고 있는 새터는 돌실에 큰 화재가 일어난 뒤 새집을 지으면서 옮겨 앉은 뜸이라고 한다. 어느 지방에나 돌실이나 석곡은 흔한 지명인데 이곳은 정말 썩 어울리고 그 유래가 분명한 소지명이다. 그것은 마을 앞에 선사시대(4세기말에서 5세기초)의 유적인 칠성바구(지석, 支石)가 있고 특히 동네 들어가는 어귀에는 아주 큰 덩치의 바위돌이 있어서 일부러 가져다놓은 표석같아 보이기도 한다. 1988년 3월 도로확장공사 때문에 긴급발굴을 했다.

석곡리 구역에 있던 7기 중 5기와 오방리 구역에 있던 15기 중 4기 등 9기만 발굴을 했는데 기반식 지석묘와 개석식 지석묘가 섞여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고 마제석검(磨製石劍), 석족(石鏃), 숫돌(砥石), 단도마연토기소호(丹塗摩硏土器小壺), 천하석제소옥(天河石製小玉) 등 희귀한 선사유물이 출토 되었다. 이 동네에는 마두로 넘어가는 산고개를 버덩곶재 또는 마두재라 부르는데 이는 험한 산고개가 아니라 평평한 지형의 고갯마루라는 뜻이고 유곡 너실(판곡)로 이어지는 산고개는 사부장재다. 이는 힘들이지 않고 가만히 넘어 갈 수 있는 나직한 산고개란 뜻인데 우리지방 토박이말로 사부제기(사부자기)라거나 사부작사부작 걸어간다는 말이 더러 쓰인다.

또 두곡마을로 통하는 길은 양징이재라고 하는데 이는 원래 지명이 두곡이 아니라 막실이며 맨 안쪽의 마을 이름이 양징이(양정)이기 때문에 그런 재 이름이 붙게 된 것이라고 한다. 송정마을 뒷산 중턱 소나무숲 속에 있는 식호당(式好堂)은 한백기(韓伯埼)공이 머물면서 후학양성을 하던 곳인데 당호는 당시 윤순지 군수가 직접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현풍 곽씨의 석산재(石山齋)가 있으며 골돌실은 전주 최씨가, 송정은 청주 한씨, 창녕 조씨, 경주 김씨가 비슷한 시기에 들어 왔다고 하며 돌실 본동은 현풍 곽씨가 일찍 터를 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최씨가 17집, 곽씨가 15집, 한씨가 10집, 조씨가 6집이고 김씨, 이씨가 서너집씩 네땀을 다 보태야 54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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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 정곡면 총무팀 
  • 연락처 055-570-4611
  • 최종수정일 2023-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