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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가례면 갑을마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4069
등록일
2003.08.05
읍면
가례면
첨부

가례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이십 리쯤 되는 깊숙한 골안 막바지 마을이다.

옛 촌명은「쇠목」또는 「쇠목촌」이다. 이 마을 바로 뒤쪽에 있는 산고개가 「쇠목재」인데 이 재이름 때문에 촌명도 그렇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자굴산의 우람한 덩치가 소머리고 동남으로 길게 뻗은 산줄기가 몸통으로 큰 황소처럼 생겼고 엉덩이 부분이 용덕의 신덕산(新德山)으로 보는 것이다. 「쇠목재」를 넘으면 대의면 모의골인데 옛날에는 사람들의 내왕이 잦았던 잿길이었다고 한다.

마을 오른쪽으로도 억센 산봉우리가 겹쳐진 청명산(청명산)이 길게 누워있다. 두 산맥사이에 너댓의 뜸이 형성되어 있는 이 골을 옛 문헌에는 「갈골」로 부르면서 「갑을골」이라고 하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에 비슷한 소리의 한자로써 甲乙로 고쳐 쓴 것으로 믿어진다. 마을뒤「목씨묏등」이라는 버덩의 고총 묘갈명에「項村」이라는 지명으로 쓰고 있는바「목(모가지)」이나 「쇠목」이란 말을 한자로 바꾸어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임란전후 피난처로 보고 목시(睦인지 木인지 확인 할 수 없음)가 처음 정착했다는 말만 구전 될 뿐이다. 정확한 연대나 규모는 알 수 없지만 한때 대찰(大刹))로 알려진 보리사(菩提寺), 갑을사(甲乙寺)등이 있었다고 한다.

보리사지에는 돌구유와 부도가 남아있고 광복 후에도 있었던 석탑은 없다. 일제 때 창원 정(丁)씨의 창씨명에 썼던 대원(大原)은 마을 앞들 이름인 「한들(큰들)」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마을 북쪽으로는 오뉴월 소나기도 겨울비처럼 차갑게 느껴진다하여 이름 붙은「찰비(찬비)재」는 궁류벽계로 통한다. 조금 아래쪽에「버재(부자)」를 넘으면 유곡이다.

옛날 유곡에 살던 남(南). 강(姜), 이(□)씨 등 큰 부자들 때문에 생긴 재이름이고 「뿔땅골」은 옛날 큰절이 있었던 골짜기라고 한다. 자굴산쪽 칠부능선에 「빈대절터」가 있다. 큰절이 었었는데 산빈대 때문에 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쇠목재 북쪽 높은 산봉우리에서 조금 아래쪽에 농(□)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는데 이게「농바구」또는「농덤이」이라 한다.

벌써 십육 칠대를 살았다는 정(丁)씨가 서른댓집으로 대성이며 표(表), 문(文), 엄(嚴), 이(□), 김(金)씨 등이 한두집씩이라 갑을 정촌(丁村)이라 할 만하다. 자굴산 중턱에 백련암(百蓮庵)이 있고 마을 가운데 영향재(永香齋)라는 정씨재실이 있다. 특수한 소득작물은 없고 산자락에 밤 밭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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