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류면 신기마을
지동마을과 지척에 있는 들가운데 위치한 마을로 고유지명은「새터」다. 동쪽에 거장산(해발 381m미터)이 막아서 있으며 마을터와 논밭도 언덕배기 지형이다. 마을이 형성된지는 오래되지 않았고 큰동네에서 동떨어진 곳에 서너집이 사는「포구징이」또는 「포오」라는 작은 땀이 있다. 이 마을은 덜렁 들어 얹힌 지대의 풀밭이었다고 하며 인근마을 사람들이 들어와서 논밭을 일구고 농막을 짓고 농사를 짓게 되었고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새로 형성된 지역인 이곳도「새터」로 불렸고 한자로 신기(新基)로 정했다고 한다. 웃동네인 소화에서 내려오는 물길과 다현과 지동쪽에서 흐르는 냇물이 이 동네 앞에서 합수가 되기 때문에 그 지점을「모두배기」라고 부른다. 이 곳「모두배기」밑에 있는 논들을「개무덤」이니「개무덤들」이라는데 이 말은 개(浦)와 「모둠」이란 말의 복합어인 것 같다. 즉 큰도랑 물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물길 모둠 곳이란 뜻에서「개모둠」으로 불렀는데 이 말이 변음돼서「개무덤」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포오」란 뜸이름은 큰 또랑 건너 뜸이다. 개(浦)와 밖(外)이란 말을 붙여 쓰자니 「개바께」「갯밖」이라 했다가 한자명으로 바꾸면서 포외가 되었고 발음상「포오」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포구징이」는 큰포구나무가 있었거나 아니면 물가동네란 뜻에서 쓴 것으로 보이나 확인할 수 없다. 「사창들」이란 들 이름과「사창먼당」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는 옛날 각 고을의 요지마다 설치하여 백성들에게 이른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걷이때 받아 들이는 사창제도로서 지금의 읍·면 지역마다 2∼3개소의 큰곳집(창고)이 있었던 자리라는 뜻인데 우리 고을에도 「사창들」「창골」「창땀」「사창골」등 지명이 여러군데서 쓰이고 있다. 이 동네 앞에 「딱독골」이란 지명이 있는데 이는 옛날 딱나무 종이를 만들 때 큰돌팍(딱껍질을 찧는 돌 또는 절구)이 있어서 닥나무와 돌절구(돌(石): 독) 즉「닥돌」이란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동네 안에는 담양전씨 문중의 자산정(紫山亭)이 있고 길가에는「효자통정대부 만은 안악이공 유허비(이일승공)」가 서 있다. 담양전씨가 먼저와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씨가 15세대, 남·김씨가 8세대, 그 밖에 정·성·강·노씨가 두어집 씩이고 나머지 윤·장씨가 한집씩 모두 40세대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