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류면 석정마을
궁류면 소재지와 서쪽산 밑 새편마을 그리고 대숲 등 세뜸인데 토곡리 석정마을이다. 옛지명은「돌징이」또는「석징이」라고 불렀다. 면사무소 옆에 당산이 있고 작은 연못이 있었고 큰 돌매(연자방아 또는 연자매라고도 함)가 있었기 때문에 사철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리 조금 떨어진 곳에 400년은 넘었다는 큰 정자나무가 있고 동네 뒤로 왕대숲이 우거진「대숲」이란 큰 동네가 있다. 그래서 돌매와 정자나무를 붙여 만든 지명인 것 같다. 돌정자란 말을 쉽고 편하게 부러자니「돌징이」로 변음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이 지명을 한자표기를 하면서 돌(石)과 정(亭)으로 했다. 또 토곡마을 옆 산자락에 「세편」이라는 동네는 서편(서쪽)에 자리잡은 뜸이라서 서편이란 말이 변음이 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도 조금 이 흔적은 보이는데 면사무소 자리는 약간 나질막한 고개였고 큰 도로 쪽은 「장터껄」이니 「주막껄」이란 불렀는데 주막 몇 집이 있었으며 한참 뒤에 이곳은 면단위의 작은 궁류장터가 되었으므로「새장터」라 불리워지기도 했다. 동남쪽 저만치에 신통하게 자리잡은 거장산이 막아 서 있고 토곡쪽은 시리봉(시루봉)산인데 다른 동리와 다르게 이곳은 들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동리 들머리에 임란창의때 큰 전공을 세우고 순절한 이운장(□雲長)장군의 순절비와 안악 이씨 종실인 우산정사(愚山精舍)가 있다. 동네에서 동남으로는 비탈진 지대이지만 제법 너른 들이 있다. 대숲이라 부르는 동네는 소재지와 장지(진마리)마을 사이에 있는데 동리명이 한자 표기 때, 옛 지명대로 죽림으로 했다. 지금 20여세대가 살고 있으며 줄었고, 한길가 주막껄(장터껄)에 여러 기관이 있어서 30여세대로 불어났다고 한다. 광산 김씨가 먼저 들어와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석정 새장터는 운계쪽(구장터라고 부르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석정보다는 운 계쪽에 장터가 먼저 섰던 탓이라고 한다. 현재는 손씨가 15세대, 강씨13세대, 김·이·임씨가 7∼8세대씩이고, 박·오·전씨가 각 대여섯집씩으로 모두 70세대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