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류면 평촌마을
이 마을과 벽계·운계리 지역은 옛날 합천군 궁소면이었다. 1913년(대정2년) 당시 행정구역 조정시책에 따라 궁류면은 일류곡면(一柳谷面)과 궁소면(宮所面)을 통합해서 7개리로 편성되었다. 이웃 유곡면 은 이유곡면 (二柳谷面)과 화곡 일부지역과 능인, 정곡(정실)을 통폐합하여 11개리로 확정함으로서 일, 이유곡면이란 지명이 없어진 것이다. 이 곳 평촌은 신라시대 어느 왕자가 잠시 머문 행궁소(行宮所)였다거나 신라가 백제 또는 가야국과의 전쟁 때 왕이 직접 진두 지휘하면서 한동안 머물렀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얘기는 문헌 기록상으로는 확인 할 수 없었다. 동네 가장위쪽에「오호땀(오오땀으로 발음함」이라고 부르는 뜸이 있는데 이는 언제나 다섯집이 산다는 뜻이다. 여섯집이 되면 늦게 들어온 그 집이 우환이 겹쳐져서 결국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바로 이 터가 궁소면 때의 고을집터라 민소터(면사무소자리)라고 한다. 상노인 분들은 아예 궁시(궁소의 변음)동네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평촌마을은 오호땀과 여남 집이 있는 갱구땀(갱구는 갱변이란 토박이말로 시내, 도랑을 말함)과 큰 동네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평촌에서 왼쪽골짜기로 한참 가면 벽언이 동네와 찰비골이고 오른쪽 산고갯길로 오르면 재한태(대현)마을로 가게 되며, 갱구땜뒤「밤재」를 넘으면 토곡으로 가게 된다. 산 좋고, 물 좋기로 이름난 이곳은 신라 때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들 믿고 있다. 마을 양지땀에는 달성 서씨문중의 남덕재와 달성 서씨 삼충효비(서진성, 서진휘, 서진태공)가 서 있다. 이 마을에는 처음 밀양 박씨가 자리 잡았다고 하며 현재 서씨가 25세대로 가장 많고 다음이 김씨19세대, 박씨가 16세대이며 오·한·허씨는 서너집씩이다. 모두 62세대가 살고 있다.